어떤 순간이 있다. 가을이나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처럼 반듯하게 선으로 그을 수는 없어도, 누구나 그것이 시작되었음을 알아채는 순간이 있다.


그날은 영화를 보고 있었다. 영화 속의 인물이 "사랑에 빠지는 순간을 본 것 같다."라는 독백을 할 때, 나는 문득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았다.


603 버스 맨 뒷자리에 앉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창문 새로 서늘한 바람이 들어왔다. 모르고 있었는데 가을이 시작됐었구나, 처음으로 가을을 알아차렸다. 실은 시작된 것이 아마도 가을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2012. 9.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