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릴없이 걷기 시작한 것은 연극이 끝나고 난 뒤 마땅히 할만한 일이 떠오르지 않아서였는지 모른다. 한밤의 대학로를 가로질러 마로니에 공원을 지나자, 북적이던 거리가 거짓말처럼 조용해지더니 스산한 기운마저 돌기 시작했다.
목적지를 두지 않는 산책은 일종의 모험이다, 라고 누가 말했던가. (내가 말했다.) 그렇게 부러 뻔히 아는 곳에서 길을 잃게된 발걸음은 방송통신대 옆으로 난 좁은 골목을 향했다. 마치 연극이 끝난 무대처럼 어두운 길가에 '교대문구'라는 낡은 간판을 단 오래된 문구점이 있었다.
"왜 문구점 이름이 '교대문구' 일까요?"
"음, 다음 일하는 사람에게 얼른 교대해달라는 뜻으로?"
"아. 그렇구나."
주제가 이어지지 않는 불연속적인 대화를 나누었고, 모험으로 느꼈던 산책이 끝나갈 무렵 우리가 걸어온 길이 사범대학 부설초등학교 담 옆이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아하, 여기 옛날에 사범대 자리였나보네. 그래서 교대문구인가?"
그날의 불연속적인 대화 탓일까. 남아있는 기억 또한 불연속적이어서 그때 봤던 연극의 제목도 심지어 계절도 기억나지 않지만, 길을 잃은 곳에서 발견한 교대문구의 간판은 아직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2012. 1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