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빠르게 식어갔다. 9월 새 학기가 시작되고 주중에는 금요일까지 수업, 주말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고향 집에 내려갈 새도 없이 어느새 가을을 맞이했다. 짐을 줄이고자 가을옷을 하나도 챙겨 오지 않아 계절을 미처 따라가지 못하고 반팔 옷으로 하루를 버티고 있던 참이었다.
그해 여름, 방학 수강 신청 기간에 나와 K는 심리학 수업 하나를 같이 듣기로 약속했다. 일주일에 두 번, 네 시 반에 수선관 3층에서 수업을 들으며 만날 수 있었다. K는 가을에 여름을 사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어느 날 가방에서 쥐색 긴팔 셔츠를 꺼내 내밀었다. 군대 간 오빠 옷장에서 꺼내 왔다고, 비슷한 체형이긴 한데 잘 맞을지 모르겠다며.
오빠가 며칠 후 휴가 나온다며 몇 번 입지 못하고 돌려주었지만 나는 금방 가을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계절은 점점 더 빠르게 식어갔고, 나의 스무 살 가을은 그렇게 끝나가고 있었다.
2012. 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