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와 우리 동네 이야기를 하다 '보석길'이란 말이 귀에 걸렸다. "서울슈퍼에서 올라가는 언덕길 말인데, 몰랐어?"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오늘 밤 집에 가면서 한 번 유심히 관찰해봐." H는 답을 가르쳐주지 않은 채 내가 문제를 해결했을 때의 기쁨을 예상한 것처럼 숙제를 내주었다.


그날 밤 집에 돌아가는 길에 나는, '유심히' 관찰할 필요도 없이 그 기쁨을 온전히 누릴 수 있었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이 오렌지색 가로등에 반사되어 보석을 박아놓은 것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수년을 살던 동네인데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분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 뒤로 그 길은 나에게도 보석길이 되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 명륜동을 떠나 새로 이사한 동네 집 앞에도 '보석길'이 깔려 있었다. 난 하루 만에 알아챌 수 있었고 곧바로 H에게 그 사실을 문자로 알렸다. 그사이 나는 보석길을 잘 알아채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2015. 6. 19.